2016년 5월 31일 화요일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산문집)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산문집) [미셸 투르니에]이 책은 메모가 생활의 일부가 된 투르니에가 그간 쌓인 자신의 30여 권의 수첩 속에서 추려낸 생각의 편린들이다. 짧고 직설적이고 깊이 있고 박학한 기록들, 투르니에의 말대로 다듬지 않은 그대로의 메모라고 보기엔 믿기 어려운 보석 같은 글들이 열두 달의 장을 수밀하게 장식하고 있다.일년 열두 달이라는 상징적인 장 분류는 삶의 완전한 한 주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 한 주기 동안 투르니에의 시선은 사물들, 사람들, 책들, 그리고 여행지의 풍경에 닿아 '발견'하고 그들을 '존재'하게 만든다.그가 식물의 동물적 속성을 자신의 정원 안에서 발견하는 장면은 투르니에 등장하는 욕망의 원형에 선이 닿는다. 두 그루의 전나무가 생존에 필요한 공간과 빛을 독차지하려고 다투는 정원에 들어서면 '강제수용소 같은 증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나무들엑 푸념한다. 그가 쓴, 그리고 쓸 작품들은 거실에 세원둔 '예수를 안고 있는 성 요셉 상'에 대유된다. 그는 요셉이 안고 있는 예수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며, 때문에 요셉은 '추정상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내가 마음속에 품어 낳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튀니지로의 자동차 여행중에 만났던 히치하이킹 소년은 서정성 짙은 로드무비 한 편을 연상시킨다. 차에 태워준 튀니지 소년이 차 앞유리에 맨발을 붙이고 있다 내린 몇 주일 뒤, 파리로 돌아와 추운 날씨 탓에 차 앞유리에 김이 서리자 또렷이 드러나는 튀니지 아이의 맨발 자국. 투르니에가 즐겨듣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4번 1악장에 대한 '언제나 변함없는 놀라움과 황홀함. 나는 이 음악의 아름다움에 습관이 되지 않는다' 라는 예찬은 베토벤 못지않은 그의 젊은 열정의 표현으로 읽힌다.우리 집 정원에서 넓적부리 암놈 한 마리가 제 아들놈 중 하나와 살림을 차렸다. 자연이 앙갚음을 하는지 이 암놈이 모두 새끼를 깔 수 없는 알을 낳았다. 그런데도 암놈은 한사코 알을 품는다. 두 번이나 나는 암놈이 그 알을 깨어서 속에 든 것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괴상하게도 이놈은 그 알의 껍질들을 연못에 가지고 가서 씻는 것이다. 이 새는 마치 내게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희화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구상하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만 작품들의 원고를 버리지 못한 채 끝없이 푸고 있는 작가의 희화를 말이다.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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